여수 스카이타워에서 본 바다와 하늘☞☞\(^o^)/

여수 스카이타워에서 본 바다와 하늘☞☞\(^o^)/

여수엑스포에 들렸다가 스카이타워 전망대에 들렸습니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본 바다와 하늘이 수평선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 끝을 알수 없는 풍경이 나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희락은 성령의 열매▶▶▷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

희락은 성령의 열매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



 

 

 



시온은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곳입니다. (사33장 20~24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복을 명하신 시온에서 표정이 어두워서는 곤란합니다.   복을 받으면 누구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들의 표정이 늘 화가 나 있고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더니 복 받은 사람들의 얼굴이 젏게 어둡고 침울할까' 하고 오히려 의구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고 천국 가게 되었으니 항상 우리 가운데 기쁨을 넘치게 하여 하늘 아버지(안상홍님) 어머니께 기쁨을 가득히 드리도록 합시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성품에서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갈5장 16~24절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것고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육체의 욕심은 성령의 거룩하신 뜻을 거스르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육체의 욕심을 이룾려 하면 거기서부터 다툼과 분리가 생기고 은혜롭지 못한 내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에도 희락, 곧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행위의 열매가 나와야 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


웃음은 또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교회와 소울(soul)♪♬♩


웃음은 또 하나의 계명


♪♬♩ 하나님의교회와 소울(soul)♪♬♩



세인들도 웃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성경에서는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살전 5장 15~18절  "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좋을 때만 그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기쁨과 기도, 감사를 잊지 말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니믜 뜻이라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은 이 말씀을 반드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어렵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감사의 요소를 찾아내면 기뻐하고 감사할 결과가 반드시 주어집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고 기쁨을 이기지 못했던 장면을 보며 우리 역시 영적 사라이신 하늘 어머니께 기쁨을 드리는 자녀들이 되도록 노력해봅시다.



창 21장 2~7절  "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을 미리 약속하시면서 그의 이름을 '웃음' 이라는 의미의 이삭이라 하게 하셨습니다. ( 창17장 19절 ).   그 말씀처럼, 이삭을 낳고 사라는 " 하나님께서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 라고 했습니다.   노년에 얻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웃음을 주셨고, 주위 사람들도 축하하며 함께 기뻐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삭을 바라보는 사라에게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어머니 사라에게 웃음 그 자체가 되었듯이, 오늘날 시온에 거하는 자녀들도 영적 사라이신 하늘 어머니께 웃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교회와 소울(soul)♪♬♩

 

 

 

 


♪♬♩ 하나님의교회와 소울(soul)♪♬♩

[하나님의교회]불파불립

[하나님의교회]불파불립

 

[하나님의교회]

불파불립

 

 

 

 

A.D. 30년경 이스라엘 예루살렘 외곽에 위치한 ‘골고다’라 불리는 사형장. 군중들은 한 남자의 처참한 죽음을 구경하고 있었다. 당시 극형에 해당하는 십자가형이 집행되고 있었다. 그의 죄목은 신성모독죄.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감히 ‘하나님’이라 했다는 이유였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로마 군병에 의해 짐승처럼 끌려 다녔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채 수치를 당했다. 로마 군병들은 그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히며 조롱과 모욕을 주었다. 그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수많은 여인들은 눈물을 흘렸고, 로마 군병들은 그의 걸음을 재촉하며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뭔가 이상하다. 눈물 흘린 여인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죽음을 관망하던 군중, 그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로마 군병들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을 회당에서, 때로는 언덕에서, 많은 군중들 가운데서 천국에 가라고 외쳤을 뿐이다.

이는 사람 되어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님의 이야기다. 왜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까?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그릇된 사상이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한복음 10:33)
 

물론,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사람으로 오실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당연히 사람으로도 오실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께서 한 아기 즉, 사람으로 탄생하시리라는 이사야의 이 예언은 700년 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회는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을 믿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복음 사업은 실패한 듯 비쳐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 안에는 예수님께서 본보이신 안식일과 유월절 등 새 언약의 절기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4~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희생으로 세워주신 안식일과 유월절 등 사라져버린 절기들을 다시 가르쳐주시고 본보여주시고자 다시 오실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사도 바울의 예언에 따라 이 땅에 사람 되어 두 번째 나타나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예언대로 오셔서 사라진 하나님의 절기들을 가르쳐주시고 본보여주셨다.

불파불립(不破不立)이란 말이 있다. “깨뜨리지 않으면 세울 수 없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실 수 없다’는 잘못된 사상을 깨뜨리지 않고선 올바른 신앙을 세울 수 없다.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 예배, 태양신 탄생일인 크리스마스가 하나님의 예배일이라는 착각을 깨뜨려야만 구원을 이룰 수 있다.

진정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잘못된 사상을 깨뜨리고 성경의 예언 따라 두 번째 사람 되어 오신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다시금 세워주신 새 언약의 안식일,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예언을 따라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자녀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를 믿고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할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엘로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으로 존재하심을 깨달을수 있을 것입니다.

 

 

 

 

영혼의 학대자에게서 하나님의교회로 **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 **

영혼의 학대자에게서

하나님의교회로

 

영혼의 학대자에게서 하나님의교회로

 

 

 

 

 

 

자연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평온하고 경이롭다. 봄바람이 불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앙상한 나무들은 연둣빛 새싹들과 꾳을 피워내느라 여념이 없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깨어나고 산새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생명이 움트는 봄이 지나면 곧 진초록의 여름이 올 것이고, 이어 울긋불긋 단풍 드는 가을이, 그리고 하얗게 눈 덮인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알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연 사진작가들이다. 자연사진은 산이나 강 등을 담아내는 풍경사진과 야생 동식물 등 생물을 대상으로 한 생태사진 그리고 수중사진 등이 있다. 사진작가들은 오랜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아낸다. 새끼 새가 알에서 막 부화되는 모습, 어미가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모습, 사자가 먹이를 사냥하는 순간까지 자연사진을 보면 이런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감탄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한 사진작가가 새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초록의 숲을 배경으로 부모 새와 새끼 새의 끈끈한 사랑과 새들의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날갯짓을 담아낸 사진들이 전시됐다. 나뭇가지 위에 새끼 새들은 작은 부리로 부모 새가 물어다주는 모이를 받아먹는다. 귀여운 새끼 새들을 어미 새와 아비 새가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진다. 사진의 완벽의 구도와 색채감, 새들의 움직임은 한 폭의 그림이라 해도 믿을 만큼 예쁘다.


 

그런데 이 사진들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다. 사진과 새에 대한 지식이 없는 필자 같은 사람은 마냥 멋있게만 보이는 이 사진들이 실은 “비도덕적인 만행이 담겨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사진들이 동물을 학대하고, 자연을 훼손하면서 촬영된 연출 사진이라는 것이다.


 

부모 새와 새끼 새들이 나란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전문가는 “새끼 새들이 죽지 않기 위해 겨우 앉아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새의 습성상 새끼 새들이 나란히 앉을 수는 없는데, 여러 마리의 새끼 새가 줄 맞춰 앉아 있는 장면은 새를 학대한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솜털도 마르지 않은 새끼를 납치해서 부모 새의 보호본능을 악용한 사진도 여러 장이다. 날지도 못하는 새끼 새를 휘청이는 꽃가지 위에 올려놓고 부모 새를 유인하는 사진, 여리디여린 새끼 새를 나뭇가지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어미 새와 아비 새가 그 주변에서 맴도는 사진도 있다. “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나뭇가지에 새끼 새의 발을 본드로 붙여놓은 것 같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 기가 막힌다.


 

보통 새들은 맹금류나 들고양이, 살쾡이 등 천적을 피해 어둡고 잎이 많은 나무에 둥지를 튼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진작가의 사진 속에는 둥지 주위의 나뭇가지들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둥지는 훤히 드러나 있고, 주변에 무성해야 할 잎사귀는 구도에 맞게 자리해 있어 인공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주변의 가지와 잎사귀들을 톱이나 전정가위 등으로 쳐내거나 잘라낸 흔적이라고 한다.


 

어떤 사진 속에는 새끼 새가 보호받을 둥지조차 없다. 여러 마리의 새끼 새 중 한 마리만 꺼내 가지 위에 올려놓고 어미 새를 유인하거나, 먹이를 물고 새끼에게 날아오는 부모 새들에게 돌을 던져 좋은 구조를 만들어내기도 한단다. 자연광을 더 밝게 받기 위해 둥지를 아예 옮겨버리는 경우도 있고, 이마저도 부족하다 싶으면 카메라 플래시나 조명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당연히 새들이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은 자명하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고 사진을 보니 화가 치민다. 안전한 둥지 안에서 부모 새의 보호를 받으며평온함 속에 있어야 할 새끼 새들이 몇몇 사진작가의 탐욕과 비윤리적인 행위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비양심적인 행태는 종교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거짓 목자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명을 담보로 영적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당부하신 말씀은 내 양(백성)을 잘 보살피라는 것이었다(요한복음 21:15~17). 그리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친히 본보여주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부탁하셨다(마태복음 28:19~20). 그런데 양을 돌봐야 할 목자들이 거짓말로 양들을 속이며 양들을 돌보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서 선지자들의 배역함이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전재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으며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그 가운데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에스겔 22:25~28)


 

하나님의 율법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거짓 목자들로 인해 하나님께서 더럽힘을 받았다고 하신다. 그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볼모로 잡아 성도의 피를 흘리고, 영혼을 멸하는 거짓 선지자인 것이다. 사람의 계명인 일요일 예배나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둔갑시켜 거짓말로 많은 영혼을 멸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스겔 22:31)


 

사진 속 새들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새들의 실제 상황은 이미 천적에게 노출되어 생명이 위태롭다. 겉모습만 아름답게 찍힌 새들의 현실과 거짓 목자에게 속아 일요일마다 성경을 들고 경건한 척하는 기독교인들의 현실이 다를 게 있을까.


 

<참고자료>
1. ‘자연 학대 사진촬영은 이제 그만’, 한겨레, 2013. 2. 13.
http://ecotopia.hani.co.kr/?mid=media&category=112&page=6&document_srl=68626
2. ‘새끼 납치·둥지 훼손…‘자연 학대’ 사진 촬영 이제 그만’, 한겨레, 2014. 7. 15.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647053.html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는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께서 하나님의 절기 지키는 시온을 세우시고 자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성령과신부께서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씨앗

 

 

 

성령과 신부되시는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아름답고 깨끗한

 세마포예복의 장식으로

하늘 본향 갈 날을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