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처럼 ( 출처 : 패스티브닷컴 중 : 하나님의교회 )

상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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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사는 어류들은 가스양을 조절하는 공기주머니, 부레를 가지고 태어난다. 물과 몸속의 비중을 일치시키는, 완벽한 자동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부레는 어류가 상하로 이동할 때에도 쓰이며 어류의 청각, 평형감각 등도 담당한다. 어류들이 굳이 지느러미를 움직이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수심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도 부레 덕분이다.

 


그런데 상어는 어류면서도 부레가 없다. 이렇게 중요한 부레를 가지지 못한 상어는 과연 어떻게 가라앉지 않을까. 또한 어류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상어가 어떻게 바다동물의 가장 강력한 포식자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을까.


상어는 쉴 새 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이유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다. 부레 없이 태어난 상어는 잠시도 쉬지 않고 평생 헤엄을 쳐야 하는데, 몸의 구조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부레로 헤엄치는 경골어류와 달리 상어의 뼈는 물렁뼈(연골)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내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은 지방간으로 상어에게 약간의 부력을 준다. 해서 상어는 쉬지 않고 헤엄치며 죽을 때까지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없다.


상어를 포식자로 보이게 하는 주된 원인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다니기 때문이다. 상어가 입을 벌린 채 헤엄을 치는 이유는 아가미에 운동기능이 없어서다. 대부분 어류가 아가미를 통해 물속의 산소를 빨아들인다. 하지만 아가미에 운동기능이 없는 상어는 입을 벌린 채 계속 움직여야 물이 아가미로 들어간다. 이 같은 상어의 모습에 피식자들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중생태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상어를 보며 우리도 신앙생활에 있어 쉴 새 없는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기 위해 몸짓을 멈출 수 없는 상어처럼 우리도 천국으로 향하는 몸짓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관두는 내 마음대로의 신앙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다. 믿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한다. 쉼 없는 그 길 끝에는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기에 비록 지금의 이 길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쉼 없는 우리의 몸짓이 결국은 믿음의 목적을 이룰 수 있으리라.


<참고자료>
1. ‘상어’,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4&contents_id=43337
2. ‘부레’,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3720&cid=40942&categoryId=32319


출처 : 패스티브닷컴 중 : 상어처럼 ( 하나님의교회 )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하나님의교회 : 패스티브]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방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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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가장 중요시하며 그중 ‘방언 은사’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기성교인들은 ‘아따따따’나 ‘쭈쭈쭈쭈’, ‘랄랄랄라’, ‘따랍따또로뿌뿌’ 등 알 수 없는 말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방언이라고 말한다.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이자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이라는 방언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께서 주신 방언의 역사인지 교리비교를 통해 알아보자.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1. 근거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4)


방언의 역사는 2,000년 전 초대교회시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는 초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벗어나 소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로 전파되면서 급격하게 증가한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모였던 사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 증거로 각자 다른 방언을 하게 하셨다.


이렇게 시작된 방언의 역사는 오늘날 기독교 신앙에 있어 자신을 교회 공동체 속의 특별한 존재로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증명서가 됐다. 누구든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면 그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린도전서 12:28~31)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세운 일꾼으로 목사, 전도사, 집사 등 직분자들이 있으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직분에 맞는 은사를 주신다. 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일부 신도들은 방언의 역사를 체험했다며 세상 어떤 언어로도 표현되지 않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기독교에서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곧 ‘하늘의 언어를 말한다’로 직역된다.

 


2. 교단

천주교와 개신교라 불리는 5개 교단, 특히 오순절교회 계통인 순복음교회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방언이라고 가르친다.

 


3. 결론

교회의 성장이 내면보다 외형에 치우친 결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생겨났다. 교회 내에 보다 많은 교인을 모이게 하고, 보다 유명해지게 하려면 ‘방언의 역사’가 필요했다. 교회의 십자가 아래 모인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신기한 기적처럼 보여지는 어떤 행위가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의 역사’는 없다. 성경에서는 방언을 ‘천사의 말’이나 ‘천국의 언어’ 등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방언은 외국어

1. 근거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곧 지구상에 존재하는 '외국어'다. 천지창조의 역사가 기록된 창세기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방언이 곧 외국어임을 알려주셨다.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세기 10:5)


홍수로 인류를 멸망케 하신 하나님께서 홍수 후, 노아에게 중다한 후손을 주시고 그들로부터 각 나라와 종족을 나뉘게 하셨다. 그리고 각 나라 백성들에게 방언 즉 종족들의 언어를 주셨다. 방언이란 이렇게 사용 지역 또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분화된 말의 체계임을 알 수 있다.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열왕기하 18:28)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느헤미야 13:24)


그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 (이사야 19:18)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사도행전 21:40)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사도행전 14:11)


이 성경구절들을 보면, 방언은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또한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방언을 구사했다. 물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닌 히브리어, 루가오니아어였다.

 


2. 교단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내리셨다. 세계 각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아 각국으로 가서 진정한 방언의 역사를 이룬 교단은 전 세계 175개국에 2,500개의 교회를 세운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다.

 


3. 결론

성경에서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가지고 ‘방언’이라 하지 않는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아 방언을 했던 사도들도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사도행전 2:6~12)


다른 언어를 쓰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렇다고 사도들이 그 언어들을 배운 것도 아니다. 오로지 성령으로 방언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바로 방언의 역사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때의 역사를 두고 방언에 대해 기록하기를 ‘신약시대에 성령에 힘입어 제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외국 말을 하여 이방인을 놀라게 한 말’이라고 적고 있다.


사도들의 행적 가운데 주목할 점은 하나님의 절기인 ‘오순절’을 지킨 후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도 지키지 않으면서 방언의 은사를 운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패스티브 방언에 대하여 하나님의교회

 

 

 

교회의 성장이 내면보다 외형에 치우친 결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생겨났다. 교회 내에 보다 많은 교인을 모이게 하고, 보다 유명해지게 하려면 ‘방언의 역사’가 필요했다. 교회의 십자가 아래 모인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신기한 기적처럼 보여지는 어떤 행위가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의 역사’는 없다. 성경에서는 방언을 ‘천사의 말’이나 ‘천국의 언어’ 등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가지고 ‘방언’이라 하지 않는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아 방언을 했던 사도들도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사도들의 행적 가운데 주목할 점은 하나님의 절기인 ‘오순절’을 지킨 후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도 지키지 않으면서 방언의 은사를 운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